식량 주권 빼앗겨도 좋은가?
몇 달 전, 쌀 시장을 개방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관세율을 몇백퍼센트
매기고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한다는 발표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이후로 후속보도가 이어지지 않아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하던 차 이 책을 만났다. 워낙 뉴스에 관심이 없는지라 내가 못 본 것 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그러한 개방이 국민은 고사하고 농민이나 농민단체와 전혀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는 것, 그리고 언론은
이를 외면하거나 축소보도로 일관 했다는 것을 알고 나니 헛웃음만 나온다.사실 쌀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주곡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이야 먼 과거의 일로 치부해버리지만,
그리고 건강을 위한다고 잡곡밥을 더 선호하지만, 오죽했으면 하얀 쌀 밥 먹는 것을 부의
기준으로 삼았던 시절이 있었을까? 스스로 농사를 짓고도 쌀 밥을 먹어볼 수 없었던 농민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국민들도 매 끼니를 쌀로서 해결한다는 것은 이미 중산층이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했었다. 또한 그 값의 높고 낮음을 떠나 우리에게 쌀은 늘 부족한 곡물이었다. 그러기에
해마다 가을이 되면 쌀 수확량이 얼마인지가 온 나라의 관심이 되었던 적이 그리 멀지 않은 시절의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쌀 수확량에 대한 얘기가 나오질 않게 되었다. 젊은
세대들은 쌀보다 다른 곡물을 더 많이 소비하고, 해마다 남아도는 쌀을 처분할 길이 없다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농업은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졌다.세계경제가 톱니바퀴처럼 맛 물려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산업은 개방되고, 그리고 농업도 개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 이르렀고, 그 논리에 따라 쌀을 제외한 다른 곡물이나 농산물은 거의 개방되었다. 그
결과, 과거 쌀은 자급자족을 할 수 없었지만 전체 곡물의 자급이 가능했던 것이, 이제는 20퍼센트 대의 낮은 곡물 자급률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러한 곡물 자급률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쌀마저 이제 개방된다고 하면, 우리의
곡물 자급률은 미미한 수준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수입 쌀이 들어오면서 떨어지기 시작한
쌀 값은 농민들로 하여금 쌀 농사를 포기하게 만든 것이 불과 수년 전 일이다. 쌀만 보았을 때 자급률 100퍼센트이던 것이 80퍼센트대로 떨어진 오늘의 상황인데, 그마저 개방된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의 식량을 세계시장 아니 거대
다국적 곡물기업에게 일임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비록 농산물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우리는 세계각지의 여러 국가에서 개방논리에 따라 공기업이 민영화되면서 그 나라 국민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를
이미 많이 보아왔다. 수도가, 철도가, 그리고 전기가 민영화되어 거대 다국적기업에게 넘어가면서 일어났던 일들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닌 셈이다. 만약 식량이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결국 우리의 생명 줄을 그들에게 맡기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농업생산기술이 발달한다고 할지라도 아직까지 농업은 날씨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기만 하다. 어느 한 지역의 기후변동이 그 지역의 농산물 수확량을 결정하는 중요 변수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식량을 자급하지 못한다면 결국 세계의 날씨에 일희일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최소한의 곡물 자급률은 우리에게 있어 식량주권이라 할 만도 하다.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로 출간된
이 책은 언론인 손석춘이 땅끝마을 농부인 해남군 농민회장 김덕종을 찾아 나눈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아무리
피자와 치킨을 즐겨먹더라도 우리의 주식은 쌀 일진데, 식량주권을 포기해도 좋을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는 대담은 한국 농촌의 위기와 농민운동이 나아갈 길 그리고 김남주 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해는 갑오농민전쟁 120주년을 맞은 해, 그리고
김남주 시인의 20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농민들의 삶이
갑오년과 겹쳐지고, 농부 김덕종이 말하는 친형 김남주 시인의 삶이 그 위에 포개지길 대담 집을 읽는
내내 반복된다.지난 오천년 간의 우리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농민들은 자신들을 위한 정권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손석춘은 말한다. 일제강점기는 말할 것도 없고, 전통시대 왕조와 귀족들도 농민들을
수탈의 대상으로만 삼았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각 정권은 농민들을 표밭이상으로 생각한 적이 있는지, 농민을 진심으로 대한 정권이 있는지를 손석춘은 반문한다. 그래서일까? 정부는 쌀 문제를 국가적 의제로 삼지 않고 농민의 문제로 치부하여 국민의 눈과 귀를 틀어막고 있다는 그의 말에, 120년 전의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이 겹쳐진다.
국민의 의견,
농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쌀 개방을 결정한 것은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인지를 밝혀야 한다고 말하는 김덕종은, 형인 김남주 시인에게서 농사꾼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웠고, 그래서 농민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김남주
시인의 삶을 중심으로 그들이 나눈 대담은 한국사회에서 농업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려준다. 더불어
김남주 시인의 시집을 다시 한번 꺼내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우리 시대 농업과 농민운동의 나아갈 길을 묻는다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의 다섯 번째 권으로 이번에는 ‘농부의 대자보’를 펴냈다. 이 책은 시인 고 김남주의 친동생으로 해남군농민회 회장으로 있는 땅끝마을 농부 김덕종과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인 손석춘의 한국 농촌의 위기와 농민운동의 나아갈 길 그리고 김남주 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덕종은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의장으로 활동했고, 35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운동을 해온 농민운동의 산 증인이며, 손 교수는 30년 가까이 언론계에 몸담으면서 다양한 집필 활동과 참여를 통해 진보와 언론 개혁을 위해 노력해 온 언론인이다. 이 책은 쌀 시장 개방 문제, 현재의 농업과 농민 문제, 그리고 민주·진보 진영의 성찰과 미래를 비롯해 김덕종 가족이 살아온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김남주 시인의 삶을 중심으로 김덕종과 손석춘이 나눈 이 대담은 지금 시기 한국 사회의 농업 문제와 농민운동의 문제가 무엇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시금석을 제시해 준다. 나아가 김남주 시인의 이야기를 통해 진보의 나아갈 길을 묻는다. 한편 이 책에 담긴 김남주 시인에 대한 이야기는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동생이 전하는 것이라 시인 김남주에 대해 좀 더 인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김남주 시인의 시 7편을 함께 담았다.
들어가는 말
우리 시대 농업은 무엇인가 - 손석춘
정신 바짝 차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 김덕종
1. 식량 주권 ‘인터넷 운동’ 벌일 때다
2. 머슴 살던 아버지, 주인집 딸과 결혼
3. 당신은 굶어도 소는 먹인 아버지
4. 시인 김남주 너, 내 동생답다
5. 남주 형이 들려준 ‘진정한 농사꾼’
6. 변혁의 길, 농부의 길
7. 학살 정권과의 싸움 ‘아스팔트 농사’
8. 누가 새마을운동에 ‘찬가’를 부르는가
9. 농사만 지은 누나 느그는 으째서 그 모냥이냐?
10. 기초 농산물 국가 수매와 통일농업
11. 저 별은 길 잃은 밤의 길잡이
12. 진보정당 ‘기득권’ 버려야 산다
나가는 말
조선의 마음, 농부의 가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