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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와 인연이 깊은 저자가 1979년 시작되어 1980년 5.18 광주항쟁과 함께 폭발적으로 확산된 민중미술에 헌신한 30명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국내의 민중미술과 아시아 미술과 관련된 전시 도스팅을 준비하면서 읽었는데, 한국의 민중미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선 한국의 민중미술은 형식 미학의 모더니즘 비판, 자연주의 미술에 대한 비판, 유신 독재와 광주 학살로 정권을 잡은 이들의 부당함에 대한 저항으로 독창적인 현대 미술을 창조했다고 평가한다.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 운동은 두 가지 유형으로 전개되었는데, 하나는 사회진보단체, 한국의 민주화 투쟁과 함께 광주항쟁의 진상규명을 위해 선봉에 나서서 희생과 헌신을 불사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구 미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추종하는 당시의 미술계에 대한 비판과 민족미술 양식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담론 형성과 활동이었다고 한다. 1979년 광주에서는 "광자협"이, 서울에서는 "현실과 발언"이 결성되었고, 이후 "토말미술패", "임술년", "두렁", "일과 놀이"가 결성되었다고 한다.민중미술가 중 가장 먼저 소개되는 사람은 1980년대 민중미술을 섬세함과 여성성으로 감싸고 치유하고자 한 노원희다. 노동자, 빈민 등 소외된 사람들의 일상을 따스한 시선으로 삶과 행복을 기도하듯이 그려나갔다고 한다. 이어서 1980년대 한국민중미술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와 광주시각매체연구회 회원으로 각종 걸개와 만장그림, 깃발, 포스터 등 선전매체를 제작하며 파고를 넘나들었던 홍성민을 소개하고 있다. 1980년대 한국 민중 미술 운동사에 첫 걸개그림으로 기록되고 있는 "민중의 싸움"을 제작했던 사람이라 한다. 민중 미술 운동에 굵직한 역할을 수행했던 오윤도 소개되고 있다. 김지하에게 정신적 영향을 받았고 디에고 리베라와 멕시코 벽화에 대한 이해를 갖춘 뒤 조소과를 졸업했고, 1970년대 중후반 중국 노신이 전개한 목판화 운동에 관한 자료를 접하면서 목판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목판화 형식은 보급성과 직접성으로 대중과 미술을 나누고 소통하여 민중 속으로 파고드는 계몽에 큰 효과가 있는 점에 주목했다는 것이다.오윤은 민중의 개념을 소외계층, 생산의 주체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적인 민중의 개념, 즉, 민중을 저항력이나 역사 변혁의 주체 등 민중 논리적 태도로 바라보는데 동의하지 않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어서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불렸으나 어려운 가장 형편으로 미대에 진학하지 못했던 안창홍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래된 사진을 통해 훼손된 사회와 인간의 잔혹함, 황폐함과 고독함, 현대 사회의 소외와 불안감을 담아왔다고 한다. 또한 "현실과 발언" 창립회원으로 민중미술의 중심에서 도시의 사회적 모순과 민중의 삶의 구조에 대한 문제를 화면에 담아낸 민정기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도시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일상적 삶을 물상화하면서 담담하게 회색 색상의 필치로 그려나갔는데, "영화를 보고 만족한 K씨" 작품 같은 경우 마치 인간을 짐승이나 물건 취급하는 당시의 권력자들이 활개 친 1980년대 민중의 억압된 삶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1980년대에 캔버스 대신 양곡부대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던 농민화가인 이종구도 소개한다.광주 토박이로 우리 시대 자연주의 화가로 소개하고 있는 강연균, 농민과 도시 노동자의 삶에서 리얼리티를 찾으며 땅에 대한 애착을 민족 정서로 묶어낸 임옥상, 민중의 가난한 삶, 근현대사의 비통과 항거에 대한 냉철한 역사의식을 드러낸 손장섭, "한열이를 살려내라"라는 걸개그림으로 유명세를 떨친 최병수, 1970년대 민중미술 그룹 "두렁"을 조직하고 "산그림 운동"을 펼친 김봉준, 대학 졸업 후 강원도 태백으로 이사해 30여년간 광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막장에서 노동하며 광부화가로 활동했던 황재형, 참교육 해직 교사 출신 판화작가로 오윤의 판화를 계승했던 홍선웅, 땅과 흙의 역사를 주제로 민중미술의 씨앗을 뿌렸던 김정헌, 오윤과 만남을 통해 민중 판화를 시작했던 이철수, 1980년대 중반 이후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노동과 정치 집회 현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작가로 탱화를 수업하고 굿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했던 곽영화, 4.19에 직접 참여했으며 오로지 한국의 조형 언어와 미학적 원형을 연구하기 위해 전국 사찰을 여행하면서 전통춤에서 그 원형을 찾았던 심정수도 소개되고 있다.특히 내가 도슨팅하는 전시와 관련된 작가들의 소개도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신학철의 경우 실험성이 강한 젊은 작가 그룹인 A.G그룹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작가이며, 진정한 모더니스트로 소개한다. 그러나 그가 만든 "한국현대사 시리즈"는 한국만의 특별한 역사가 읽히지 않는다고 평한다. 그것은 신학철의 예술적 출발지였던 모더니즘이 갖는 예술적 태도와 조형성을 극복하지 못함에서 오는 한계라는 것이다. 박불똥의 경우 사진 콜라주라는 예술 양식을 통해 국가주의와 천박한 소비문화를 강요하는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풍자했다고 말한다. 가난한 젊은 예술가인 박불똥에게는 길거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신문이나 잡지가 모두 콜라주의 재료였으며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부각되었을거라 말한다. 1960년대 이후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민중들은 경제개발과 새마을운동 등으로 허리를 졸라매면서 보릿고개를 넘기고 열심히 일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그 축적의 대가로 말미암아 1980년대로 넘어서면서 민중들은 폭력적 소비를 강요받았다는 것이다.여기에 박불똥은 국가 폭력과 자본주의의 무지한 소비문화를 강요하는 사회, 정치적 현상을 적나라하게 체험하고 이러한 시대 현실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또한 윤석남의 경우 그림의 주요한 테마는 어머니였는데, 척박한 환경에서 6남매의 교육과 삶을 위해 눈물겨운 처절한 몸부림을 보여준 그 어머니를 형상화 했다고 한다. 헌 목재에 먹선으로 평면의 얼굴을 그리고 군데군데 인두로 지지고 다듬어 엷은 색을 바른 여인의 목조상에서 한반도의 괴롭고 쓸쓸한 역사를 읽을 수 있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광주자유미술인협회를 결성하고, 광주항쟁 연작판화 "새벽"을 만들어 한국 리얼리즘 미술의 새로운 예술 형식을 연 홍성담도 소개하고 있다. 그 밖에 이 책에서는 민중미술 2세대 작가로 큰 할아버지가 의제 허백련인 허달용, 6월 항쟁을 작품으로 남긴 김호석, 제주 출신으로 4.3항쟁 연작을 만든 강요배, IMF, 미국발 금융위기, 신자유주의 등의 상황에서 끊임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는 소시민을 그린 이원석 외에도 박은태, 박영균, 송봉채, 정정엽, 구본주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의 민중미술은 30년이 넘도록 사회, 정치는 물론 생명과 환경, 인권에 이르기까지 인간사회와 관계의 문제를 예술에 이입했다고 평가하면서 시대가 바뀌면서 민중미술의 지형과 정신도 변화했다고 말한다. 이제 과거의 이념이나 사회 변혁이 아닌 환경, 인종, 반전, 평화, 인권 등으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화두와 다양한 예술 형식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386 운동권 다음 세대로서 이러한 민중미술이 좀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민중미술의 태생과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 책이 좀 아쉬운 점은 책에서 소개하는 작가들의 작품들 중 많은 부분들이 도판으로 수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가의 대표작을 소개하면서 이 책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없었기에 일일이 인터넷을 뒤져볼 수 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이 책이 개정판이 나온다면 저작권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도판으로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한다.
1979년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뜨거운 순간들을 한 필의 붓으로 그려낸 대표적 민중미술가 30인의 예술 세계와 작품을 정리한 책이다. 광주시립미술관 큐레이터인 저자는 80년대 저항 운동이 뜨거웠던 그 순간부터 지난 30년 동안 민중미술에 대해 연구하고 직접 전시를 기획했다.

책에 등장하는 30인의 작가들은 형식 미학의 모더니즘과 자연주의 미술 등 서구 미학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당시의 미술계를 비판하고, 유신 독재와 광주 학살로 정권을 잡은 이들의 부당함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 진보적 미술인들이다. 이들을 통해 대중에게 오랫동안 거칠고 투쟁적으로만 비춰졌던 민중미술이 시대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대응해왔고, 미술사적으로 어떻게 정리되었으며, 이후 자본주의와 환경, 생태, 인권문제에 어떠한 입장을 취하며 진화해왔는지, 그리고 현재 어떠한 자취를 남기고 있는지에 대해 평가한다.

사람들은 흔히 민중미술을 무서운 그림, 왠지 거북하고 어려운 작품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민중미술은 시대의 아픔을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한, 너무나 현실적이고 지극히 자유로운 예술의 한 장르이다. 세상이 주는 삶의 무게와 현실에 대한 고민을 온몸으로 표현한 대표적 민중미술가 30명의 삶과 예술작품을 통해 현재 내가 서 있는 곳이 아무리 힘들고 아프고 어려울지라도 그곳에서 희망과 사랑과 온기를 다시금 발견할 수 있는 여유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펴내며_
저자 서문_ 5월의 미학으로 보는 민중미술

1장. 메마른 대지에 바람과 비
무거운 주제를 ‘수필적 기법’으로 풀다_노원희
수묵으로 펼쳐지는 사람의 숲, ‘먹빛 불꽃’_홍성민
민중미술의 지평을 열고 바람이 된 자유인_오윤
괴기한 일상에서 역사의 보편성 형상화_안창홍
도시를 해부하던 ‘붓’, 우리 산천을 해명하다_민정기
자본으로 위장된 공포와 불안_이원석
‘모진 역사’를 딛고 살아남은 얼굴들_이종구

2장. 물빛이 하늘빛을 품다
향토적 서정주의의 경지와 예술가적 책무_강연균
불안한 시대의 ‘집시의 미학’_임옥상
남도적 서정주의에 뿌리를 둔 민중미술_손장섭
어머니의 얼굴에서 읽는 우리의 자화상_윤석남
성실성으로 현장을 지배하는 목수화가_최병수
리얼리즘 미술은 민중과 함께한다_곽영화
어두운 현실에서 빚어낸 ‘생명의 빛’_심정수
80년대, 부채의식이 품은 희망과 절망_박은태

3장. 어둠 끝에서 올린 생명
모더니즘에서 출발한 역사와 현실의 지평_신학철
땅과 하늘이 만나 신화가 되는 ‘신명미술’_김봉준
검은 막장에서 5월 광주를 보는 민중화가_황재형
민중수묵의 창조를 위한 눈물겨운 고통_허달용
성실성으로 벼린 5월의 칼날_홍선웅
독자적 사진 콜라주로 ‘자본주의 비판’_박불똥
‘땅과 흙’에서 역사를 읽는 리얼리즘_김정헌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은 민중판화가_이철수

4장. 붉은 가슴이 새벽을 열다
저항을 넘어 창조의 메시지를 던지다.홍성담
생활화로 일구는 역사, 민중에게 바치는 서정시.김호석
역사 속에서 들리는 빛의 소리.강요배
체인으로 엮인 보이지 않는 세상.손봉채
씨앗에서 5월의 화엄꽃을 피우다.정정엽
소시민 삶의 처절한 행진곡.구본주
민족적 형식으로 민중의 삶을 그리는가?.박영균

부록_ 민중미술 연보.1979~2012